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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언제, 이 곳에 느티나무를 심었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존해 계신다면 올해 춘추가 일백하고도 이십이 되셨을 우리 조부께서도 모른다고 하셨다 합니다.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 183번지에 자리를 잡은, 나무 둘레 5.2m, 나무 높이(수고)15m, 수령이 2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 노루목, 섬밭골, 구렛골, 대추나무골, 짝바우께, 거문골, 이징골, 신배나무골, 헛가무골, 푸짓골, 까투리 번던, 뒷골, 쐐기골... 상보, 웃합소, 아래합소... 차돌바위, 코클바위... 동네의 산천이 수십번은 변하도록, 이 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이 땅에 묻힌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도록, 오랜 세월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때로는 안락한 쉼터를 만들어 주는 그늘목으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 칠 때는 방풍을, 상서로운 기운이 빠져 나갈 듯 하면 장풍을, 심지어 단오 때는 그네줄을 매는 지주목이 되어 동네 부녀자의 유희시설 역할까지 해오며 의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구학산에 화전을 일구어 조를 심어서 가을에는 천석을 수확하였기에 별호가 조천석이었다는 전설상 인물이 누구였는 지도 이 느티나무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원주로 향하던 의병들이 한참을 쉬고 전열을 갖추어 한잇재로 힘차게 발을 내딛던 곳도 아마 이 느티나무 아래였을 것입니다. 해방이 된 후 일본인이 눈물을 머금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금덩이를 묻었다는 곳도 틀림없이 이 느티나무 근처 어디 쯤일 것입니다. 6.25 동란 중 은거지를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을에 불을 질러야 했던 아군의 눈물과 그 참담한 광경을 이 느티나무는 똑똑히 보았을 것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다 보니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어린 아이들 두어 명이 들어가서 숨을 수 있을 만큼의 빈 공간이 생겼었습니다. 이름을 밝히는 건 좀 그렇지만, 동네 형들이 나무위로 연기가 나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장난기가 발동하여 나무속 빈 공간에다 불을 지핀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나무의 빈 속을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 다시는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었지만... 이 느티나무에게는 최대의 수난이었고,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내려가 좀 떨어져서 느티나무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균형 잡힌 수형, 경이롭기까지 한 자태... 든든한 버팀목임을, 애정과 애착심이 점점 깊어 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에 멍석을 깔고 칠판을 걸고 만든 임시 교실에서 구구단을 배웠던.. 책가방을 나무속 빈 공간에다 쌓아 두고 비석치기를 하던 아련한 추억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