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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강씨의 유래

먼저 강(康)씨의 유래에 앞서 강(康)자의 의미에 대해 궁구해보면 강(康) 자처럼 좋은 의미를 가진 자는 세상에 없을 것 같다. 康은 庚 자에 米를 조합한 글자다. 庚은 일곱 번째 천간으로 별을 의미하며 米는 쌀로써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따라서 강(康)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뜻으로 평안 화목, 안락함을 상징하는 글자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성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신천강씨의 비조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아우인 강숙(康叔) 공이다. 강숙(康叔) 공은 위(衛)나라 초대 왕으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가 백모(伯髦) 공이다. 공은 아버지 강숙(康叔) 공을 계승하여 위나라를 통치했다. 공의 후손들이 바로 중국과 대만에 살고 있는 중화강씨다. 둘째 아드님은 중모(㑖髦) 공이다. 공에 대한 기록은 일주서 작낙해 편에 봉지를 받아 동으로 갔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이는 기자가 조선으로 나올 때 따라 들어왔다. 이때 중모공은 조선에 들어와 교화를 조성하는 등 훈로가 많았다. 기자는 이를 치하하여 관정대훈공신(關鼎大勳功臣)에 봉했다. 우리 강씨들은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을 득성조로 모시고 있다.

득성조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부터 67세까지 이어진 선계는 고조선부터의 강씨들의 선대 어른들로 확실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실질적인 신천강의 시조는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의 68세인 성골장군 휘(諱) 호경(好景) 공이시다. 이 어른이 고려태조의 외 6대조이시니 공을 국조대왕(國祖大王)으로 부르고, 공의 손 보육(寶育) 공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공의 후손들은 황해도 신천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황해도 지방의 토성으로서 고려조에서 크게 세력을 떨치고 살아왔다. 공의 14세손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侍中) 휘(諱) 지연(之淵)공이 고종을 호종하여 강화도 천도에 큰 공을 세웠다. 고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성부원군에 봉하고 신천을 식읍지로 하사하였다. 후손들은 지연공을 중시조로 모시고 본관을 신천으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분관(分貫)되어 별관으로 곡산, 재령, 안릉. 충주, 승평이 있으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康씨들은 공의 후손들이며 신천강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