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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중시조
     

시조(始祖) 휘 호경(虎景)공은 신라 때 분으로 진원(晉原) 경양리(景陽里)에서 출생하셨다.

나신지 6개월 만에 장사괴(張士魁)의 난(亂)을 만나서 창황중(蒼黃中)에 후원초림(後園草林)에서 실종된 채 피난하였다가 난이 평정된 후에 돌아와 보니 백호일쌍(白虎一雙)이 와서 어린애를 품고 젖을 먹이어 보호하고 있음으로 부모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거두어 길으니 후일에 위인이 되었다. 경양리에서 나서 호(虎)의 보호가 있었다 하여 이름을 호경(虎景)이라 하였다고 한다.

공(公)은 호를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 하고(신라 때는 귀족을 성골 진골 대골로 칭하였음) 백두산으로 부터 부소산에 이르러서 살고 있는데, 항상 산수를 좋아 하여 명산을 편답하는 바 하루는 동리사람 아홉명과 더불어 평나산에 올라서 사냥을 하다가 마침 해가 저물어 바위 동굴 속에서 하루를 지내는 중 홀연 대호(大虎)가 나타나서 동굴 속의 사람들을 해치려 함에, 열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저 대호가 우리를 다 해치려 하니 우리 열사람이 서로 자기의 관(모자)을 호랑이 앞에 던져서 누구의 관을 물던지 그 사람이 해(害)를 당하자 하고, 각각 자기의 관을 벗어 던지니 그 호랑이가 호경공의 의관을 물고 나감으로 공이 바위동굴 속에서 나와 호랑이와 격투하려 하니, 그 대호는 문득 간데없고 그 바위가 무너져서 동굴 속에 있는 아홉 사람이 매몰되어 죽고 말았다. 즉 공만 살아남았으니 산신령이 굴이 무너질 것을 알고 공을 구한 것이었다. 공이 마을에 내려와서 그 사실을 알리고 아홉 사람을 장사 지내고, 그 산 이름을 고쳐서 구룡산이라 하였으며 구룡사를 짓고 그들의 원혼을 위로 했으며, 후에 그 곳 사람들이 구룡산(일명 聖居山)에 공의 사당을 세우고 제향(祭享)을 올렸다.

고려국 태조 왕건은 공의 외예(外裔)로서 태조가 건국한 후 공을 국조로 여김으로 온 백성들이 공을 국조호경대왕(國祖虎景大王)이라 칭송 하며 제향을 드렸다. 공의 아들 휘 충(忠)공이 있으니 신라의 상사(上沙) 아간(阿干)이라는 벼슬을 하였으며, 부소산에 산형을 살펴보고 송목(松木)을 무수히 심어서 산을 울창하게 하여 검은 바위들을 가리게 하고 산명을 송악산이라 고치고 그 곳에서 살았다. 그 후 고려 태조는 왕도를 송악산에 정 하였으며, 지금도 개성 만월대 석면(石面)에 강충대(康忠臺)라고 새긴 각자(刻子)가 있다.

* 휘 충공의 장자(長子)인 휘 보승(寶甸)공은 문하태학사(門下太學士)의 벼슬을 지내고,
* 2자 휘 보육(二子 寶育)공은 호는 죽헌거사(竹軒居士)이니 고려 태조의 외고조가 되므로 공을 원덕대왕(元德大王)에 봉(封)하였다.

휘보육공이 이녀(二女)를 두었는데 제이녀(第二女)의 휘는 진의(辰義)이다.(후에 貞和王后에 봉해짐)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출중하였는데 그때에 마침 당나라 선종(宣宗)이 태자로 있을 때에 명승산천(名勝山川)을 주유(周遊)하여 당나라 천보십이년(天寶十二年) 계사(癸巳) 춘이월(春二月)에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와서 대동강에 이르러 금수강산인 평양을 구경하고 송악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이 곳에 후일 반드시 도성(都城)이 들어 안겠다 하고 마사갑(摩詞岬)으로 양자동(養子洞)에 이르러 공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 분이 공의 양녀(兩女)를 보고 마음에 감동되는 바 있어 자기의 의복을 고쳐 주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공이 심중에 이 사람이 반드시 중화(中華)에 귀인임을 짐작하고 즉시 장녀로서 그 뜻을 쫒게 하였으나 마침 병으로 인하여 이녀(二女) 진의가 대신하여 그의 뜻에 따랐고 또 혼인 하였는데 그 분이 떠날 때에 궁시(弓矢)을 주며 말하기를 당나라 귀인인데 후일에 남아(男兒)를 나으면 이것을 전하라고 하고 중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에 과연 남아를 낳으니 이 분이 곧 작제건(作帝建)이다. 작제건은 성은 왕이요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이다. 그 후에 왕건이 고려태조가 되면서 위로 3대를 대왕으로 추존할 때 '보육' 공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봉하고 묘호(廟號)를 국조(國祖)라 봉하였다.

그 아래 대수를 보면
* 호경(虎景) → 충(忠) → 보승(寶甸) → 순산 → 만루 → 연창 → 태주 → 억 → 돈순 → 참욱 → 유 → 만성 → 시필 → 지연(之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 대수는 그 사적과 연월을 상고하기 어렵고 지연(之淵)공에 와서야 연대와 사적이 확실하고 전국강씨(全國康氏)가 전부 공의 후손이므로 공의 봉작을 따라 본관을 신천(信川)으로 정하고 공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