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 천추태후에 관해 개인적 의견을 피력해 본다. 이 드라마는 차라리 특정인을 모델로 한 역발상적인 창작소설, 환타지물이라 해야 좋을 듯 싶다. 그 이유는 우선 강조(康兆) 장군이 발해 사람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서다. 강조 장군은 황해도 신천지방의 호족인 신천 강씨(信川 康氏) 집안으로서, 왕건 고려태조의 22번째 부인인 신주원부인(信州 =信川의 옛이름)의 집안 동생이다.(우리나라의 康씨는 모두 이 계열 외에는 없다) <信州原夫人; 信川豪族 康起珠의 딸>
다시 말해 강조 장군은 왕실사람이었다. 장군의 집안 누이는 왕건의 부인으로서 (신주원부인)광종을 양자하여 길러서 임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장군의 부친은 왕실의 모든 정보와 상황을 알 수 있었고, 그 정보를 외직에 나가 있는 아들 강조 장군에게 수시로 전하여 왕실을 보호하고 지키려 하였다. 패서지방(해주 신천 등)의 호족들은 康씨 王씨 등이 주축이 되었고, 왕건가와 康씨가는 피로 연결된 왕실가문이라 할 수 있다. 위로 올라가면 왕건의 증조모가 康씨(정화왕후)인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고 3대를 추존할 때 정화왕후의 아버지(康寶育)를 원덕대왕으로 추존하는 등 역사를 보면 고려왕실과 康씨가는 혈연으로 연결된 것이며, 강조 장군 역시 왕실사람이라 하여도 하자가 없는 것이다.
강조 장군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부친(康 泰周)등은 천추태후의 패륜적인 왕실에 항상 우려를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가 혁명으로 맞선 사람으로서 천추태후의 무리를 제거한 사람인데, 거꾸로 흠모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말이 안 된다. 장군은 목종을 폐위하고 주살하였다 하여 역적으로 사서에 기록 하였으나 그 시대에 당위성이 있었고, 거란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과 국가관이 후세에까지도 전해오고 있는데 어찌 그 정체성까지 왜곡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장군에 관한 자료에 성이 康씨이며, 본관은 신천지방의 土姓이라고만 나오는 이유는,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옹립하는 과정에서 목종을 시해했다 하여 역적으로 기록함으로 그 후손이 숨어버려, 자세한 집안내력을 찾을 수 없었고 후에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이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역사성 있는 실존인물의 성격을 왜곡하여 흥미를 유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족보를 보면 원덕대왕(강보육)계열은 6세손까지 이어지다가 왕건시대에 와서 자손이 갑자기 끊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고 왕이 되니 그 후손들은 왕씨로 성을 바꾼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천추태후는 당시에 왕실의 가족관계상 왕실을 이으려 어쩔 수 없이 섭정을 하게 되었고 그의 업적은 없다 할 것이며, 서희장군 강조 장군, 강감찬 장군 등의 충성어린 업적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천추태후(황보씨)는 무인도 아니었고 전장에 나간 일도 없는 인물이다. 정부인 김치양과 더불어 자기자식(목종)까지 살해하려 하고 불륜으로 낳은 자식을 왕위에 올리려다 강조 장군에 의해 몰락한 요부인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데 왜 이런 인물을 한국의 잔다르크로 왜곡했는지,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드라마의 일부 왜곡된 내용은 소설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