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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뚫린 듯이 퍼부어 대던 장대비도
아버님이 영면하시던 날은 멈추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잘아시다시피 뒷골 밭이 산속 깊히 있어
비가 조금만 와도 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잖습니까?
아버님을 모시던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모든 문상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버님의 복(福)이라고 하셨습니다.
초상을 치르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겪을 어려움을 헤아리셔서
장마를 피하기 위해 갖은 고통을 인내하셨을 아버님!
주자십회훈 중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를 통감하며
복받쳐 오르는 애통함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요, 위대한 철학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버님!
학교의 생활기록부에 등재하기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묻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의
답은 물론이고,
취업을 위해 민간인 신원진술서를 작성할 때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심지어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의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질문에도
저의 답은 우리 아버님, 강 근(根)자 만(萬)자였습니다.
제가 호경이 만할 때이니까,
아마 초등학교 3학년쯤일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저에게 "사람이 가장 서러울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하고 하문하신 적이 있었지요.
제가 선뜻 대답을 못하자
아버님께서는 뭐니 뭐니해도 배고픔이 제일 서러운 것이라고
일러 주셨었습니다.
이름있는 경제학자의 명강의 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효과가 있는 산경제 교육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숙제로 당시 진두웅 담임선생님이
천자문을 다섯 번 써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웃땀 서당 훈장님댁에서
천자문을 초등학교 저학년용 국어공책에 베껴다가
저를 가르치셨죠.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문은 배울 것이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한문 학습을 손수 시키셨던 것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중학교 도덕시간에나 배웠을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에 대한 교육도
저는 초등학교시절에 아버님으로 부터 극조기 교육을
받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어느날
아버님께서는 저에게 "사람은 많이 알아야 하고
잘나야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됨됨이를
갖추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일제시대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 주셨었습니다.
"때는 일제시대, 개똥을 주워서 아들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시킨 한 아버지가 있었다"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셨었죠.
당시 고등문관시험은 합격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합격만 하면 아주 높은 관직이 보장되는 그런 시험이었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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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은 관직에 오른 그 아들이 하루는 금테를 두른 모자를 쓴
다른 동료들과 함께 고향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그 아들 일행이 그 아버지가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개똥을 줍고 있는
그 길로 가게 되었다.
그의 아들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자기 아버지가 하필이면
이 때에 이 곳에서 개똥을 줍고 있을까, 창피해 죽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돌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에 그 아버지는 반색을 하며"아가야! 어디를 가느나"하시면서
아들을 불렀다고 한다.
그 아들은 못들은 체 대답도 않고 황급히 도망치 듯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동료가 그 아들에게 "저 분이 누구시냐?"하고 물었단다.
그러자 그 아들은 "응, 우리집 머슴이야" 하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 후에 그 아들은 진실이 밝혀져서 파직되었고, 그는 인생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아들은 그 시절 일본인을 물리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려면
수재이어야 하고, 엄청나게 많이 알아야 하니까
든 사람임에는 틀림없고,
합격한 후에는 남들이 나리! 나리! 하고 떠받드는 아주 높은 관직에
올랐으니 또한 난 사람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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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파직을 당하고 황금빛 인생을 접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아버님께서 들려 주시던 말씀을 마치시고 저한테
하신 물음이셨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저의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이사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전학한 학교가 서울 중화동에 위치한 중화국민학교였는데,
제가 들어간 반의 학생수가 89명이었었죠.
아버님께서는 키가 작은 제가 맨뒤에 앉으면 공부를 못할까 봐
오백원을 담임 선생님께 주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버님께 사발시계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장학생이 되는 지름길을 알려
주었었는데,
"먼저 밤에 공부를 하다가 졸음이 오면 냉수마찰을 하고,
탁상시계에 일어나는 시각을 설정하여 새벽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라는 것이 장학생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버님은 저의 생떼를 들어 주시기 위해서 삼복염천의 뜨거운
어느 여름날 광호네 퇴비용 풀을 베는 삯일을 하셨습니다.
그 돈으로 탁상시계를 사주셨었는데,
그 시계를 이용하여 새벽공부를 한 날이 며칠이었는지가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죄송할 뿐입니다.
며칠 전에 아버님께서 현몽하시어 술을 마시는 요령을
알려 주신 것 생각나시죠?
첫째는 따로 줄을 서라.
"분위기에 편승하지 말고 술자리를 잘가려라" 라고 하신
말씀으로 새기겠습니다.
둘째는 안에서 잔은 받되 밖에 나와서 마셔라.
"마시는 주량을 조절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명심하겠습니다.
셋째, 잠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
"술이 많이 취해 길거리에 눕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자라"는 말씀으로 역시 마음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위의 그 아버지 보다도 수천배는 높은 교육열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식 사랑으로 저를 키워 주신 아버님의 은혜를
만분의 일 아니 백만분의 일도
갚지 못한 불효자!
풍수지탄 風樹之嘆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버님을 모신 자리가 좀 아시는 분들은 대호포유의 혈이니,
말물(勿)자의 혈이니 하시지만,
아버님이 썩 내켜 하시던 자리가 아니어서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자주 찾아 뵙고 살펴 드리는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잠 드십시오.
불효자 시환 감소고우(敢昭告于)